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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인터뷰]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 “서약 취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갔다"

윤혜진 기자yhj@healthi.kr 입력 : 2018-03-29 09:00  | 수정 : 2018-03-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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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앤라이프 윤혜진 기자] 지난해 4월 탄생한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원장으로 조원현 한국장기기증원 이사장(66)이 선임됐다. 한국장기기증원(KODA), 한국인체조직기증원(KFTD),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KOST) 등 3개 기관으로 나뉘어 있던 장기조직 기증시스템이 일원화되면서 기관을 총괄할 수장으로 한국장기기증원을 이끌던 조원현 이사장이 신임 원장으로 임명됐다. 계명대동산병원장, 대한이식학회 이사장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30년 간 장기이식 외과의사의 길을 걸으며, 국내 장기 기증 및 이식 활성화에 기여해왔다.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과 만나 우리나라 장기이식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Q. 지난해 장기기증 희망 취소자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안타깝다. 보도가 미친 영향이 너무나 컸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 결과가 결국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환자에게 고스란히 가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다가 하루 4명 정도가 세상을 떠난다. 장기기증은 생사가 달린 일이다. 사실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신문, 방송매체가 보도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부정적으로 문제 자체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개선방안을 찾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Q. 긍정적 보도가 장기기증율 상승에 영향을 얼마나 미치나

2008년 권투 경기 중 뇌출혈로 숨진 고(故) 최요삼 선수의 장기기증이 집중 보도된 후 뇌사 장기기증자와 기증 희망 등록자가 크게 늘었다. 이듬해엔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증희망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유명한 사람들의 기증은 국민들에게 본보기가 돼 기증자와 기증희망자 증가에 크게 기여한다.

 

Q. 해외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는지

아주 좋은 사례가 있다. 1994년 니콜라스라는 일곱 살 미국 소년이 이탈리아 여행 중 강도에 의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인들을 위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니콜라스의 심장, 각막, 신장, 간, 췌장을 기증해 죽음의 기로에 섰던 이탈리아인 7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집중 보도됐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유럽 내에서도 장기이식 건수가 가장 적었던 이탈리아의 1년간 장기기증 건수가 2배 이상 늘었다. 대통령 등 정재계 인사, 유명인의 장기기증 서약이 이어졌다. ‘니콜라스 효과’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을 만큼 강렬하게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Q. 장기기증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평가하면

기증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장기기증이 대가 없는 순수한 생명나눔이라는 인식이 아직 잘 정착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기증을 희망한다는 서약을 했을 뿐인데 그에 대한 혜택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들도 많다. 기증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국제사회는 장기조직 기증에 대한 예우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기증은 순수 기증의 형태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이미 2009년 장기가 어떠한 금전적 지급 또는 금전적 가치에 대한 사례 없이 자유롭게 기증돼야 한다고 권고했고, 계속해서 이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내 댓가성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Q.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가 실제 기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해결 방안이 있나

맞다. 우리나라는 고인이 생전 인체조직기증 서약을 통해 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반드시 유족 한 명의 동의가 있어야 기증할 수 있도록 법적 제한을 두고 있다. 생전에 가족을 설득하지 못하면 인체조직 기증은 물론 장기 기증도 할 수 없다. 적지 않은 가족들이 ‘사후 고인의 시신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며 가족의 기증 의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생전에 가족에게 장기기증 서약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해 설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Q. 장기 기증을 꺼리게 하는 저해효소 중 하나가 신체훼손에 대한 두려움이다.

누구나 심리적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조그마한 칼로 살짝 손을 베어도 아프고 불편한데, 어쨌든 절개 수술로 장기를 적출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나.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몸  어딘가가 아파 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다면, 수술이 잘 되길 바란다. 이식을 위한 수술도 타인을 살리기 위한 수술이다. 신체 훼손이 아니다. 타인을 살리기 위해 나의 장기가 잘 보존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생각을 전환하면 좋겠다.

 

Q. 추모공원 건립을 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다.

예우라고 하면 보통 금전적인 것을 떠올린다. 이는 장기기증자의 숭고한 정신을 자칫 금전적 보상을 따른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으며, 장기기증에 동의한 가족에게 또 한 번 상처가 된다. 유가족이 가장 바라는 예우는 추모공원 설립과 같은 기증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기증자의 정신을 충분히 인정하고 존경하는 문화가 형성돼야만 기증율이 증가할 수 있다. 때문에 추모공원을 건립할 필요성은 매우 컸다. 법적 근거를 마련한 만큼 실제 건립으로 이어져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생명 나눔에 대한 자부심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Q. 장기 기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이식인들이 함께 하는 세계이식인체육대회(World Transplant Games·WTG)가 있다고 들었다.

WTG는 전 세계에서 장기, 조직 등을 이식받은 환우들이 모여 육상. 수영, 배드민턴 등 각종 경기를 통해 이식 후 회복한 건강한 삶을 알리는 하나의 장이다.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자리이자 기증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취지의 대회다. 하지만 참가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우리나라 이식인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외국은 이식인만 100여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우리나라는 2~4명 정도가 참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식인들이 스스로 경비를 마련하거나 후원을 받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외국 문화와 우리와의 차이다.

 

Q. 마지막으로 기증을 망설이는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

사실 자기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건 평소에도 어려운 일이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죽음에 대해 평소 생각하지 않았다면 장기기증이라는 결정은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기증은 ‘생명의 끝이 아닌 누군가의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기증을 받는 대상이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yhj@health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