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홈아이콘  >  기사박스  >  스페셜리스트

[스페셜리스트] "정신치료 VR로 진화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

송보미 기자bmb@healthi.kr 입력 : 2019-02-20 14:23  | 수정 : 2019-02-20 14:23

네이버 페이스북 밴드 구글 트위터 핀터레스트 카카오스토리 카카오링크 인쇄 다운로드 확대 축소

사진=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

 

[헬스앤라이프 송보미 기자] 말더듬기로 유명했던 영국의 조지 6세는 에드워드 8세에 이어 왕위 계승을 앞두고 있었다. 왕으로 가져야 할 능력과 품격이 충분하다고 평가 받았지만, 조지 6세는 두려워했다. 심한 말더듬증 때문이었다. 그는 대중 연설을 할 상황이 오면 불안이 심각해졌고, 상황을 회피하는 행동으로 모면하기 일쑤였다. 본격적인 왕위 계승을 앞둔 조지 6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특별한 언어 치료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긴장상황에서 호흡 훈련과 이완요법을 수없이 실시했고, 사람들 앞에서의 연설을 체계적으로 반복 연습했다. 그는 마침내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훌륭한 연설을 해냈다.

 

현재로 돌아와 조지 6세의 발표공포증 치료과정은 이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을 이용해 병원에서 치료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는 국내 최초로 지난 2005년 ‘가상현실 클리닉’을 개소, 조현병 환자들의 사회기술 능력 향상을 위해 가상현실 치료를 도입했다. 뿐만아니라 발표 불안, 면접 공포 극복은 물론 알코올 중독자들의 음주 거절 능력 향상을 위해서 활용된다. 올해는 공황장애 치료 프로그램 개시를 앞두고 있다. 가상현실 치료의 선두주자,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가상현실 클리닉을 다녀왔다.

 

가상현실, 병원에서 어떻게 사용될까
사용자가 생생하게 실재감을 느끼는 가상현실의 특징은 몰입(Immersion), 상호작용(Interaction), 상상(Imagination)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를 사용해 외부 세계의 자극이 차단되며 온전히 화면에만 집중할 수 하고 머리의 움직임과 시선을 감지해 3차원 화면에 반영된다. 과거에는 컴퓨터에 연결된 주변 장치 들만 사용됐지만, 근래에는 스마트폰을 장착할 수 있는 HMD 장치가 일반화됨에 따라 모바일 가상현실이 가능해졌다.

 

가상현실의 치료적 효과 중 가장 큰 이점은, 자발적 치료동기를 유발한다는 데 있다. 사용자로 하여금 동기와 흥미를 유발하고 참여 의식을 고조하는 데 일조한다. 이 같은 효과는 가상현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라는 사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는 환경에서 도전하고 상호작용하며 사실성, 환상, 협동성, 몰입 등과 같은 현상들이 확대돼 발생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이점으로 가상현실 테크놀로지는 병원 임상 장면뿐만 아니라 비행 훈련, 특수운전, 미래공간 체험, 산업 교육 등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사진=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

 

 

발표 불안 극복 효과 80% 이상... 조현병 환자 사회기술 향상 지역사회 복귀 도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지난 2005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가상현실 치료를 도입했다. 미국에서 참전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치료하기 위해 VR이 사용되는 것을 본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의학과 교수가 이를 국내 의료 환경에 가져온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은 사회공포증 인지행동치료, 조현병 사회기술훈련, 알코올중독 단주훈련 등에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1회당 90~120분간 주 1회 혹은 2회씩 이뤄지며, 총 10회 과정으로 치료가 진행된다.

 

특히 조현병(schizophrenia) 환자들의 사회기술훈련에 사용되는 가상현실 치료는 최근 지역공동체에서 이들을 포용해 함께 생활하도록 돕는 사회적 제도와도 맞닿는다. 조현병을 당장 호전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사회 속에서 어울려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은 주의집중을 잘 못하고, 의욕수준도 낮아 지루한 환경에서는 쉽게 훈련을 포기한다. 이때 가상현실이 힘을 발휘한다. 환자들이 스스로 흥미를 갖고 동기가 유발돼 훈련 유지에 용이하다. 또 가상현실을 이용해 다양한 인지영역 훈련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카드분류를 이용한 인지유연성 훈련이나 작동기억 증진 훈련, 방해자극을 피하는 운동 협응력 훈련, 주의 분산 자극을 극복하는 집중력 유지 훈련도 동시에 진행된다.

 

사회기술훈련은 자신의 감정, 욕구 소망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하는 방법을 증진하고 타인의 감정이나 욕구 등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구체적 훈련내용에는 대화 경청하기와 질문하기, 말하기, 자기주장하기, 사회적 문제 해결하기, 사회적 상황에서 거절 혹은 요청하기 등이 포함된다.

 

사회공포증 인지행동치료는 가상현실치료로 인한 호전율이 80~90%에 달할 정도로 효과가 좋다. 사회공포증 치료에 효과를 인정받은 인지행동 치료를 가상현실을 통해 진행한다.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은 사회적 장면과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특별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겪는 가벼운 긴장감과는 차이가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 부터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 연설이나 발표를 하고 면접을 보는 등의 장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상현실치료는 자주 회피하던 불안 상황을 가상현실 속에서 똑같이 구현한다. 예를 들면 발표가 불편한 사람이 HMD를 머리에 착용하면 발표 연단과 청중이 가상현실로 펼쳐진다. 환자는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당 상황을 직면해서 발표를 계속 연습하면서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고 상황마다 발생하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사고를 합리적으로 수정해 봄으로써 불안과 공포를 감소시킬 수 있게 된다.

 

 

‘가상현실 공황장애 치료’ 올해 국내 최초로 선보일 예정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는 국내 최초 가상현실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장면에 도입 후 꾸준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부터 삼성전자와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 (주)에프앤아이는 가상현실 기반의 건강관리 기술을 공동 개발 중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방대한 의료데이터와 삼성전자의 가상현실 헤드셋 ‘기어 VR’, 에프앤아이의 VR 콘텐츠 개발 기술이 접목돼 모바일 가상현실 기반의 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자살 위험 진단과 예방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연구, 심리 평가와 교육 훈련, 심리 진단과 치료 등 정신 건강을 위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료 프로그램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2018 가상현실의료 심포지엄’을 개최해 가상현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넘어 응급의학과, 이비인후과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응급의학과는 가상현실과 심폐소생술을 결합해 의료인과 일반인, 특히 어린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표준화된 트레이닝 VR CPR을 소개했다. 이비인후과는 어지럼증 치료에 가상현실을 활용했다.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시각적 자극을 포함한 영상을 보여주며 VR의 여러 센서를 통해 환자의 눈의 움직임, 무게중심의 이동 등을 파악하고 데이터로 모아 어지러움의 정도를 측정한다. 기존 치료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병원에서 벽을 보면서 치료하는 등 여러 가지 치료적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VR을 활용하면서 구체적 상황을 구현해 단계별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가상현실클리닉은 올해 ‘공황장애’ 가상현실 치료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재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래픽으로 구현한 캐릭터나 아바타가 나오는 장면 대신, 실제 진료실에서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가상현실 영상을 만들었다. 공황장애 환자가 가상현실 속 의료진과 함께 이완 호흡 훈련을 연습하고, 사람이 많은 지하철 등의 공황이 나타나는 장소를 가상현실로 체험하며 노출을 통해 체계적으로 치료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회공포증,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前 강남세브란스병원 부원장
•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사진=헬스앤라이프

김재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기술향상 훈련에 가상현실 치료를 세계 최초 도입한 주역이다. 미국에서 참전 군인을 대상으로 한 VR PTSD 치료과정을 눈 여겨본 김 교수는 이를 국내에 도입, 지난 2005년 국내 최초 가상현실클리닉을 개설했다. 김 교수를 만나 가상현실치료와 클리닉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Q. 개소 당시 가상현실 개념 자체가 낯설었을 시기다. 환자들이 잘 받아들였나.

“물론 당시에 생소해 했지만 지금도 사실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요즘은 길거리에서도 VR 체험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가상현실이 낯설지 않은 개념이 됐지만 직접 체험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드물다. 당시에 비해 현재는 그래픽 해상도, 장비의 휴대성 등이 좋아지고 가격도 저렴해졌다. 그동안 입증된 효과로 인해 참여율도 좋은 편이다.”

 

Q. 가상현실치료의 가장 큰 효과는 무엇인가.

“동기유발이다. 일단 가상현실 자체가 흥미를 자극하니까 환자 스스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회기술 훈련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롤프레잉이다. 실제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해보며 훈련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카페에서 친구랑 다퉜다고 치면 '여기가 카페이고 친구와 다퉜다고 생각해보세요'라는 식이다. 그런데 가상현실은 이를 제처럼 느끼게 눈으로 보고 감각하게 한다. 동기유발에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

 

Q. 가상현실치료의 발전을 어디까지로 보고 있는가.

“실제 치료받는 환자가 느는 만큼 발전한다. 수요가 많아야 공급의 질과 양도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미 기술적 발전은 높은 수준이고 자본의 투입이 중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를 통해 치료하고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가정에서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 소프트웨어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Q. 집에서 스스로 하는 가상현실 치료 방법이란 무엇인가.

“모바일을 이용하면 된다. 병원에서 충분히 훈련방법을 알려주고, 또 함께 훈련한다. 자가치료와 셀프트레이닝이 가능한 콘텐츠를 무료로 다운받아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요즘 HMD와 같은 장비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것임에도 활용도는 높지 않아서 아쉽다.”

 

Q. 가상현실클리닉의 최종 목표는.

“병원에 근무하고 있지만, 사회공포증을 갖고 있다거나 조현병이 있어 사회기술향상 능력 훈련이 필요한 분들을 비롯 가상현실 치료의 니즈가 있는 분들이 굳이 병원에 오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개인적 목표다.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선보이는 공황장애 치료프로그램을 필두로 가상현실 치료가 가능한 질환을 다양하게 넓히고자 한다.”


bmb@healthi.kr

 

#헬스앤라이프 #스페셜리스트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 #공황장애 #사회기술훈련 #사회공포증 #인지행동치료 #조현병 #김재진교수 #송보미기자